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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선-최보경, “함께해서 더러웠고 다시는 만나지 말자”

작성자 : 관리자2017-09-11  |  VIEW 2743


2015년 5월 2일 전주월드컵경기장. 전북현대와 수원삼성의 경기에서 수원 김은선이 뜻하지 않은 부상을 당하고 말았다. 후반 16분 역습 상황에서 상대 선수의 거친 플레이 무릎을 잡고 쓰러진 것이었다. 당시 국가대표에까지 이름을 올리며 승승장구하던 김은선은 이 부상을 당한 뒤 아예 그해 시즌을 날렸다. 당시 김은선에게 부상을 입힌 선수는 바로 전북 최보경이었다. 치명적인 부상으로 가장 중요한 시기를 허무하게 보낸 김은선은 김은선대로 힘든 시기를 보냈고 온갖 질타를 받은 최보경에게도 고통이었다.

운명의 장난처럼 동료가 된 두 선수
김은선이 부상을 당한 뒤 최보경은 미안한 마음에 김은선에게 사과 전화를 했다. 1988년생 동갑내기인 이 둘은 평소에서 어느 정도 친분을 유지하고 있었다. 학창시절부터 경기 때마다 마주치면서 인사 정도는 하는 사이였기 때문이다. 최보경은 “고의는 아니었지만 큰 부상을 입혀 미안하다”고 진심을 다해 사과했고 김은선도 “괜찮다. 경기를 하다 보면 그럴 수 있다”고 했다. 그리고 이 둘의 인연은 이렇게 끝나는 듯했다. 하지만 예상하지 못한 일이 벌어졌다. 2016년 시즌을 앞두고 이 둘이 나란히 안산무궁화 축구단에 입대한 것이었다. 피해자와 가해자(?)는 운명의 장난처럼 한 팀에 속하게 됐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이 둘은 제대를 앞두게 됐다. 21개월의 의경 복무를 마치고 오는 22일 제대를 할 예정이다. 함께 한 시간 동안 이 둘은 얼마나 더 서로에 대해 이해하게 됐을까. 팬들의 기억은 2015년 5월 부상으로 실려나간 김은선과 거친 플레이를 한 최보경에게 멈춰 있지만 시간은 흘렀고 이 둘은 어느덧 의경 생활 말년을 보내고 있다. 어제(10일) 아산이종합운동장에서 김은선과 최보경을 나란히 만나 대화를 나눴다. 떨어지는 낙엽도 조심해야 한다던 두 말년 수경은 누구나 다 이 시기에 그렇듯 이 지긋지긋한 군 생활이 끝난다는 홀가분함 대신 사회에 나가 어떻게 살아야 하나를 더 고민하고 있었다. 원래 말년은 다 그런 모양이다.

아산에서 만난 이 둘은 2015년의 아픔을 이제는 웃으며 말할 수 있게 됐다. 오히려 뼈아픈 부상을 당했던 김은선이 먼저 털털하게 다가갔다. “부상을 당한 이후에도 사이가 나빠지고 그럴 건 없었다. 오히려 내가 그걸로 입대 후 보경이를 많이 갈궜다. 오히려 그 부상으로 편하게 장난을 많이 쳤다. 보경이한테 ‘내가 그 부상 때문에 돈 얼마를 날렸는지 아느냐’고 했다.” 최보경은 이 부상 이야기만 나오면 말수가 줄었다. 그러면서도 김은선과는 여전히 돈독한 우정을 과시 중이다. “우리 둘 사이는 말할 것도 없이 친하다. 운동장에서는 물론이고 밖에서도 자주 만난다. 그 부상 이후 서로 같은 팀에서 뛰며 진중한 이야기도 많이 했고 더 가까워졌다. 은선이가 말은 이렇게 해도 남자다워서 가슴에 쌓아 두질 않는다.”

제대의 기쁨보다 더 큰 고민은?
아산은 지난 달부터 세대교체를 위해 제대를 앞둔 기수 선수들을 경기에서 배제했다. 한 달 넘는 시간 동안 경기에 나서지 않으면서 김은선과 최보경도 경기 감각이 떨어진 있는 상황이다. 이 둘 모두 몸 상태는 좋지만 바로 원소속팀으로 합류해 경쟁해야 하는 만큼 제대에 대한 기쁨보다는 고민이 더 많았다. 김은선은 “수원에 가서 경쟁해야 하고 무엇보다도 잘해야 한다”면서 “제대를 하게 돼 홀가분하지만 이제 긴장감도 흐른다. 이제 다시 시작해야 하는 시점이라 마음이 편하지만은 않다”고 밝혔다. 최보경도 마찬가지였다. 최보경은 “아산에서는 무한 신뢰를 받았다면 전북에서는 또 다시 밑바닥부터 시작해야 한다”고 각오를 다졌다.

전북으로 복귀하는 최보경과 수원삼성으로 돌아가는 김은선 모두 쟁쟁한 경쟁을 이겨내야 한다. 최보경이 웃으면서 말했다. “전북에서는 늘 내가 도마 위에 올라가 있는 심정이었다. 경기장에서 질타를 받아야 할 사람을 굳이 찾자면 나밖에 없는 기분이었다. 워낙 쟁쟁한 선수들이 많기 때문이다. 그 경쟁 속에 다시 뛰어들어야 하니 정신적인 부담도 크고 걱정도 된다.” 김은선 역시 마찬가지다. “수원삼성 경기를 거의 다 봤다. 올 시즌 초반만 하더라도 짜임새가 부족하다고 생각했는데 지금 경기력을 보면 손발이 잘 맞는 것 같다. 돌아가서 내가 적응하고 잘 하는 일만 남았다.” 이 둘은 제대 이후 먹고 살 걱정을 하는 다른 의경들과 다를 게 없었다.

매일 달력에 ‘X’를 그리면서 하루 하루 보내는 건 군 생활을 해본 이들은 다 겪어본 일일 것이다. 그만큼 시간이 잘 안 가기 때문이다. 군인들이 가장 싫어하는 노래가 ‘별’의 <12월 32일> 아닌가. 하지만 김은선은 요즘 시간 가는 줄 모른다. “오히려 훈련소에 있을 때가 시간이 잘 안 갔다. 지난 해에는 눈 깜빡 할 사이에 지나간 것 같다. 올해도 초반에는 시간이 잘 안 가는 것 같더니 5월을 넘기니까 어느덧 제대를 앞둔 시기가 됐다. 다른 애들은 매일 달력에 ‘X’ 표시를 하며 제대 날짜를 세는데 나는 몸 만드는 데만 집중했다. 그냥 애들이 다 알아서 세어 주더라.” 반면 최보경은 전형적인 ‘말년병’을 앓고 있었다. 최보경의 증상은 이렇다. “요즘 들어 시간이 너무 안 간다.” 고칠 방법은 말년 휴가밖에 없다.

이 둘이 운명의 장난처럼 또 적이 된다
최보경은 전북 시절 별명이 ‘취보경’이었다. 승리를 한 뒤 팬들 앞에서 동료들과 세리머니를 할 때 유독 취한 듯 신나 보였기 때문이다. ‘취보경’ 이야기를 꺼내자 그가 웃었다. “한 경기, 한 경기를 뛸 수 있다는 게 너무 행복했다. 거기에다 승리까지 하면 너무 기분이 좋아 취한 것처럼 즐겼다. 경기장에서는 그렇지 않지만 원래 웃음도 많은 편이다. 전북으로 돌아가면 또 경기에 나서 이기고 취한 것처럼 세리머니를 즐기고 싶다.” 최보경이 ‘취보경’을 그리워한다면 김은선은 수염을 그리워하고 있었다. 입대 전 콧수염이 트레이드마크였던 김은선은 제대하면 당장 수염부터 기를 생각이다. “수염이 없는 게 아직도 어색하다. 나가면 바로 수염부터 기를 거다. 사실 지금부터 몰래 조금씩 기르고 있는 중인데 제대 전까지 안 걸렸으면 좋겠다.” 김은선의 인중은 거뭇거뭇했다. 경찰 간부 여러분, 여기 수경이 수염 기르고 있다.

하지만 이 둘은 이런 사소한 것만 그리워하는 게 아니다. 원소속팀에서 다시 멋진 활약을 펼치는 게 가장 우선이다. 말년 휴가를 나가면 이틀 정도 쉬고 곧바로 각자의 소속팀으로 가 훈련에 임하기로 했다. 그만큼 제대 후 경쟁에 대한 준비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최보경이 말했다. “전북이 지금도 너무 잘하고 있고 내 위치에 신형민부터 김민재, 조성환, 이재성 등 좋은 선수들이 많다. 내가 그 경쟁에서 살아남으려면 더 많이 준비해야 한다.” 그러자 김은선도 제대 후 돌아갈 수원삼성에 대해 입을 열었다. “내가 있을 때와 지금의 수원 스타일이 많이 변했다. 특히나 부상 이후 입대하게 되면서 빅버드에는 2015년 5월 이후로 한 번도 밟아본 적이 없다. 3년 만에 빅버드에 돌아갈 생각을 하니 설레기도 하지만 잘해야 한다는 긴장감도 있다.”

이제 이 둘은 다시 적으로 만난다. 그런데 운명의 장난일까. 제대하고 바로 다음 주인 10월 1일 수원삼성과 전북현대가 맞대결을 펼칠 예정이다. 김은선은 수원삼성의 푸른 유니폼을 입고 최보경은 전북의 녹색 유니폼을 입는다. 적응기도 필요하고 경쟁도 이겨내야 그라운드에 설 수 있지만 워낙 실력도 뛰어나고 많은 팬들이 기다려온 선수들이라 이 경기에 나설 가능성도 충분하다. 충돌하며 부상을 당했던 선수와 부상을 입혔던 선수는 한솥밥을 먹으며 생활하다 다시 자신의 둥지로 가 또 한 번 격돌을 펼친다. 운명의 장난처럼 이 둘은 다시 이렇게 적이 될 예정이다. 그라운드에서 누구보다도 투지 넘치는 이 둘이 상대팀으로 만나 격돌할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

‘절친’이어서 유쾌한 둘의 도발
최보경은 김은선에게 큰 부상을 안겼던 기억이 있지만 그렇다고 다시 경기장에서 김은선을 만나면 피하지 않을 생각이다. 그게 바로 축구선수의 숙명이기 때문이다. “다시 그라운드에서 만나면 재미있는 일이 벌어졌으면 좋겠다. 강하게 부딪힐 것이다. 욕은 항상 내가 먹지만 무조건 이기고 싶다.” 그러자 김은선도 응수했다. “보경이와 경기장에서 만나면 경기에 집중하려고 노력하겠지만 그래도 기회가 되면 이번에는 내가 한 번 쓰러트리겠다.” 이 둘은 웃으며 마지막을 이렇게 마무리했다. 워낙 친한 사이기에 농담처럼 던질 수 있는 말이다. 김은선과 최보경은 서로를 보며 웃었다. “함께해서 더러웠고 다시는 만나지 말자.”
기사원문 : 스포츠니어스 김현회 https://goo.gl/Wv5XkQ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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